화폐로 이해하는 베트남 문화 (+반드시 알아야 될 꿀팁)

현재 베트남에서는 동전으로 된 화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포스팅 제목을 베트남 지폐 이야기로 정했었다. 그러다 그래도 한 나라의 전체 화폐에 관해 다루는 건데, 지폐라고 하면 왠지 일부분만 한정 짓는 느낌이 들어서 제목을 바꿨다. 참고로 화폐(貨幣)는 보통 종이로 된 지폐(紙幣)와 금속으로 된 주화(鑄貨)로 구성된다.

베트남 화폐의 단위는 동(đ)이다. 실제로 銅(구리 동)이 어원이며, 동전이라는 의미의 동 띠엔(đồng tiền)에서 파생됐다. 영어로는 VND(Vietnam Dong)라고 표기한다. 아래는 가장 최근까지 사용됐던 베트남 동전이다. 나 역시 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2000동짜리 동전을 어렵게 구해봤다. 동전발행은 공식적으로 지난 2011년에 중단됐으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는 지폐만 사용되고 있다.

최근 구축통화라 할 수 있는 미국달러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베트남동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는 베트남 정부가 환율방어를 잘하고 있다. 베트남동 자체가 한국원에 비해 단위가 워낙 큰 탓에 많은 사람들이 계산실수를 종종 한다. 베트남동(VND)에서 한국원(KRW)으로 값어치를 빠르게 환산하는 방법은 20으로 나누는 것이다. 보통은 뒤에 있는 0을 하나 떼고, 반으로 나누는 방법을 많이들 사용한다.

현시점에서 공식적인 베트남 지폐는 100동, 200동, 500동, 1000동, 2000동, 5000동, 1만동, 2만동, 5만동, 10만동, 20만동, 50만동으로 총 12종이 있다. 이 중에서 100동은 호치민에서 머무는 지난 6년여 동안 단 한차례도 보지 못했으며, 화폐 수집가들 정도가 모은다고 한다. 더불어 200동 역시 두어차례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500동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거스름돈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드물게나마 만나볼 수 있다. 이렇기에 일상에서는 보통 1000동부터 취급한다. 편의점에서 계산을 할 때, 500동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그냥 1000동을 내고, 그 미만이면 아예 내지 않아도 괜찮다. 이건 그냥 무언의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이다.

물론 엄연히 200동과 500동이 있긴 하지만, 베트남인이 느끼기에도 너무 작은 돈이기 때문에 계산을 아예 안한다. 따라서 혹시라도 1000동 이하의 잔돈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기분 상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센스 있는 가게에서는 이럴 경우 사탕이나 설탕 등을 대신 주기도 한다. 1000동, 2000동, 5000동 등은 일상에서 많이 사용된다. 실제 가치로는 각각 원화로 50원, 100원, 250원밖에 안되는 탓에 종종 안받는 경우가 있는데, 최대한 받아오는 게 낫다. 이걸로 주차비 등을 낼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베트남 지폐의 종류

아래 지폐들 중에서 1만동 이상은 2003년부터 폴리머(polymer)라는 특수재질로 제작돼서 굉장히 튼튼하다. 이에 비해 나머지 소액권들은 단순 종이재질로 되어 있어 내구성이 약한 편이므로 사용 시 주의해야 된다. 지폐가 조금만 손상돼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애초에 돈을 받을 때부터 손상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① 200동 : 트랙터, 벼를 수확하는 농부들

② 500동 : 항구에 있는 트롤선

트롤선(trawler)이라는 단어가 낯설 수 있는데, 저인망어선(底引網漁船)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자루처럼 생긴 그물을 끌고 다니며, 대량의 어류를 단번에 잡을 수 있는 어선이다. 국토의 절반이 바다로 둘러싸인 만큼, 베트남은 과거부터 어업이 발전했다.

③ 1000동 : 나무를 옮기는 코끼리

④ 2000동 : 방직공장

⑤ 5000동 : 수력발전소

⑥ 1만동 : 석유시추선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베트남은 원유 매장량이 아시아 3위의 산유국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26위, 동남아시아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석유가공기술이 아직 선진화되지 않은 탓에 시추만 하고, 가공은 외국계 회사들이 하고 있다.

⑦ 2만동 : 호이안 다리

공식명칭은 라이 비엔 키우(Lai Viễn Kiều)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리가 호이안(Hội An)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호이안 다리라고 부른다. 과거 호이안은 일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무역항이었기에, 당시에 지어졌던 건축물들은 일본식 건축양식의 흔적을 담고 있다.

⑧ 5만동 : 응우옌 왕조 5번째 황제의 휴게소

후에(Huế)에 있는 응헨 르엉 딘(Nghênh Lương Đình)으로 한국어로 번역하면 영량정(迎涼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량정은 응우엔(Nguyễn) 왕조 5번째 황제인 '뜨득' 때 완공됐으며, 왕이 유람선을 탈 때 중간에 휴게소 역할을 하던 건축물이다. 참고로 영량정은 역시나 후에에 위치한 응우옌 왕조의 2번째 황제 '민망'의 무덤인 랑 민망(Lăng Minh Mạng)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데, 자세히 보면 상당히 다르다. (랑 민망 또한 유교의 풍수지리에 따라 설계됐으며, 중국식 건축양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⑨ 10만동 : 베트남 최초의 대학

하노이(Hà Nội)에 위치한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반 미에우(Văn Miếu)이며, 한국으로 치면 성균관에 해당된다. 참고로 반 미에우의 유래가 되는 한자어는 문묘(文廟)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까닭에 공자묘 혹은 공자사당으로도 불린다.

⑩ 20만동 : 하롱베이

영문명인 하롱베이(Halong Bay)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베트남인들은 비잉 하롱(Vịnh Hạ Long)이라 부른다. 참고로 하롱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베트남을 침략했을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그들을 물리치고 보석과 구슬들을 내뿜었는데, 그것들이 바위가 되어 하롱베이의 섬들이 됐다고 한다. 전설에서 조차 베트남인들의 적으로 등장하는 중국인이다.

⑪ 50만동 : 호치민의 고향집

현재는 베트남의 국부(國父)인 호치민(Hồ Chí Minh)의 고향집이 베트남 지폐의 가장 고액권을 차지하고 있다.

헷갈리는 베트남 화폐

일상에서 500,000동과 20,000동의 색깔이 워낙 비슷한 탓에 잘못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건 베트남에 오래 머문 교민들은 물론 베트남인들조차 흔히 겪는 실수다. 모든 베트남 지폐의 앞면이 호치민 주석 초상화로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지폐의 색깔과 크기, 재질로 구분해야 되는데, 일부 지폐들의 경우, 얼핏 보면 색깔이 너무 비슷해서 착각하기 쉽다. 앞서 언급한 50만동과 2만동 이외에도 20만동과 5만동 역시 둘 다 비슷한 빨간색인지라 나 역시 실수한 적이 두어번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