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앞서 해당 포스팅의 주요 맥락은 지난 2019년 6월에 작성됐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그간 변화된 사항들은 추가적인 확인을 통해 최대한 현재의 상황에 맞춰 수정했다. 더불어 현재 베트남은 굉장히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문화,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에는 A라는 정보가 맞지만, 내년에는 A가 틀리고 B라는 정보가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알아야 된다. (즉,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수밖에 없다.)
베트남 로컬병원, 쩌라이병원
베트남의 의료환경은 매우 형편없다. 이는 한국이라는 의료 선진국에서 살다 온 외국인의 잣대로 평가한 것이 아니라 많은 베트남 현지인들도 공감하는 바이다. 사실 호치민은 편의점이나 마트, 백화점과 같은 편의시설은 물론 공원, 영화관 등의 문화시설들까지 제법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의료분야만큼은 정말 아닌 것 같다.
많은 베트남인들이 대형종합병원 혹은 대학병원에서의 진료를 선호하는데, 이는 작은 병원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빈맥병원, FV병원 등과 같은 국제병원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비용이 말도 안되게 비싼 것에 비해 진료서비스가 딱히 더 낫다고 하기 어렵다.
그나마 쩌라이병원(Bệnh viện Chợ Rẫy)과 이득대학병원(Bệnh viện Đại học Y Dược)이 호치민에서 가장 괜찮은 로컬병원이라 할 수 있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각각 새벽 3시와 4시부터 진료접수 대기번호표를 발부하기 시작한다.
진료접수 대기번호표를 받기 위해, 환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새벽 1~2시부터 나와 줄을 선다.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되는 아침 6시쯤에 오면, 아예 대기번호표를 받지 못하거나 매우 늦은 오후 시간에 진료를 받아야 되는데, 이럴 경우 진료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다음날 재방문해야 된다. 따라서 지방에서 오는 환자들일수록 어떻게든 당일에 끝내기 위해 새벽부터 줄서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2019년 6월, 베트남 지인의 진료를 돕기 위해 쩌라이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다. 사실 전에 이득대학병원에 조금 늦게 접수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고생했던 경험이 있던지라, 이번에 쩌라이병원을 이용할 때는 아예 이른 새벽에 도착했다. 아래 왼쪽 사진은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찍은 진료신청 대기줄 상황이다. 아직은 그래도 50여명 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새벽 3시 30분경에 찍었으며, 대기줄이 이제는 아예 병원 외부로까지 나간 상태다.
병원 여기저기에서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고단한 몸을 뉘어 잠을 청하고 있다. 흡사 난민과도 같은 모습이다. 아니 실제로 의료난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 들어 차마 그러진 않았다.) 앞서도 밝혔지만, 환자들이 직접 진료접수 대기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지치기 때문에 대부분 환자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대신 접수대기를 한다.
새치기 때문에 벌어지는 소소한 말다툼과 관리인들이 이를 소리 지르며 통제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사실 베트남인들은 공공질서에 대한 의식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슬며시 새치기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물론 모든 베트남인들이 다 공공질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젊은 베트남인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질서를 좀 더 잘 지키는 편이다.
새벽 6시쯤 되니 대기줄이 이미 병원 외부를 넘어 도로에까지 이르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진료접수 신청서류이며, 오른쪽과 같이 번호를 찍어 준다. 나는 정확히 67째로 받았다. 일부 노인들에게 줄을 계속 양보하다 보니 순서가 밀렸는데, 어쨌든 이 정도면 굉장히 빠른 번호다.
번호표를 받으면, 이제부터가 사실상 진짜 전쟁의 시작이다. 엄청난 인파 사이에서 격투기 수준의 밀치기를 하면서 진료과와 원무과를 계속 왔다 갔다 해야 된다. 지인은 위내시경을 받으러 왔는데, 움직였던 동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얼마나 복잡한지, 베트남 로컬병원 이용이 절대 유쾌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접수처앞(진료접수 대기) → 접수처(내과진료 예약) → 내과(내과진료 실제접수) → 원무과(위내시경 비용결제) → 위내시경검사실(위내시경 실제접수) → 원무과(위내시경 추가비용결제) → 내과(위내시경 결과확인) → 원무과(결과확인후 추가비용결제)
추가 업데이트
지난 2020년 11월, 쩌라이병원에 다시 방문해 본 결과, 새벽 6시부터 대기번호표를 발부하는 것으로 변경됐고, 접수도 접수원에게 문의하는 것이 아닌 키오스크를 통해 등록하는 시스템으로 변했다. 베트남의 발전속도가 새삼 놀라웠다. 물론 여전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몰리긴 했지만, 이전보다 빠르게 등록이 가능해서 그런지 조금은 쾌적해진 듯한 느낌이다.
지난 2022년 12월, 이득대학병원에 재방문했다. 여전히 새벽 4시부터 접수가 시작되기 때문에 2시쯤부터는 줄을 서야 됐다. 어쨌든 호치민에 사는 이상 대안이 없으므로, 불평하지 말자는 다짐을 새삼 몇번이나 했다. 쩌라이병원이 외과에 강하다면, 이득대학병은 내과에 강한 편이다. 그 외에 산부인과는 뜨유병원(Bệnh viện Từ Dũ), 안과는 호치민시 눈병원(Bệnh Viện Mắt Thành Phố Hồ Chí Minh), 심장은 떰득심장병원(Bệnh viện tim Tâm Đức)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