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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일년살기

호치민 지역별 특징 (+호치민 지도)

by 알 렌 2024.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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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의 경제수도 호치민시를 보통 호치민이라 부르는데, 엄밀하게는 잘못된 표현이다. 정식명칭은 탄포 호치민(Thành phố Hồ Chí Minh) 혹은 Ho Chi Minh City다. 다만, 외국인들이나 현지인들 모두 일상적으로 호치민이나 사이공(Sài Gòn)이라 부르니,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호치민 지도와 함께 지역별 특징에 관해 알아보자.

 

사이공이라는 도시명의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중국어 西貢(서공)이라는 단어에서 왔다는 의견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서쪽에서 조공을 바치다.'라는 다소 굴욕적인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트남은 중국에 무려 1,000여년 가까운 기간 동안 종속됐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사이공은 그 유래와 달리 호치민시 시민 입장에서는 아련한 느낌이 있는 명칭이다. 그래서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호치민시를 굳이 사이공이라 부를 때가 많다.

 

베트남 근현대사, 호치민시의 유래

사이공이라는 명칭은 여전히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이공역(철도)이나 사이공항구는 물론 각종 회사의 브랜드명으로도 활용된다. 그럼 사이공이라는 도시명은 언제 호치민시로 변경된 걸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고, 9월 2일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이 1945년 9월 2일은 국부(國父) 호치민(胡志明)이 하노이의 바딘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그래서 매년 9월 2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해 그 의미를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1954년 제네바 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은 분단된다.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북베트남(월맹)과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남베트남(월남)은 서로 간에 체제경쟁을 하는 와중에 우리에게는 베트남 전쟁으로 익숙한 2차 인도차이나전쟁이 발발했다. 공식적으로는 1955년 11월부터 시작됐으며, 미군은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1964년 8월에 군사를 투입했다. 한국도 미국의 우방국 일원으로 1965년부터 참전했다.

 

미국이 참전한 이상, 베트남 전쟁의 승리는 당연히 남베트남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 내 반전시위가 격해짐에 따라, 1973년 3월에 모든 병력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빠진 남베트남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무너졌으며, 1975년 4월 30일에는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이 북베트남에 의해 점령당했다. 이때를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남베트남의 대통령이 머물던 통일궁에 탱크로 입성한 것인데, 당시의 탱크는 현재도 통일궁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매년 4월 30일을 사이공 해방기념일이라 부르며 공휴일로 지정했다.

 

사이공 해방기념일은 남부해방일이나 통일의 날로도 불리는데, 이는 이날을 기점으로 통일에 사실상 성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후 1976년 7월 2일에는 기존 사이공(현재의 1군과 3군)과 주변 교외지역을 합쳐 호치민시를 출범시켰다. 이게 바로 현재 호치민시의 유래라 할 수 있다.

 

호치민시 지역별 특성

호치민시는 한국으로 치면 구(區)에 해당되는 군(Quận)이 총 19개 있는데, 이중에는 숫자로 이뤄진 12개의 군과 지역명으로 이뤄진 7개의 군이 있다. 지역명으로 이뤄진 7개의 군은 Thủ Đức(투득), Bình Thạnh(빈탄), Bình Tân(빈떤), Gò Vấp(고밥), Phú Nhuận(푸년), Tân Bình(떤빈), Tân Phú(떤푸)다. 이외에 호치민시 외곽지역에 한국의 군(郡)에 해당되는 5개의 현(Huyện)이 있는데, 이들은 꾸찌(Củ Chi), 혹몬(Hóc Môn), 빈짜인(Bình Chánh), 나베(Nhà Bè), 껀저(Cần Giờ)다.

 

호치민시 지도

 

한인타운은 7군의 푸미흥(Phú Mỹ Hưng)에 있다. 이곳에는 굉장히 많은 한인업체들이 함께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베트남어나 영어를 못해도 사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 푸미흥 신도시가 런칭되기 전에는 떤선녓 공항이 위치한 떤빈군이 한인타운이었다. 참고로 일본인들은 1군의 레탄톤(Lê Thánh Tôn) 거리에 주로 머물고 있으며, 5군에는 중국인들이 집단거주하며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다. 서양인들은 대개 외국인 특별거주구역으로 지정된 2군에 거주한다.

 

호치민시에는 넘쳐나는 일자리 때문에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기존 사이공 원주민들은 주로 1군, 3군에 머물고 있지만, 새로 전입한 외지인들은 이들 지역의 집값이 워낙 비싼 관계로 근방인 4군, 고밥군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예전에는 4군과 고밥군에 대한 시선이 상당히 안좋은 편이었으며, 실제로 슬럼화가 진행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호치민시가 확장 발전함에 따라, 이들 지역 역시 현재는 상당히 고도화됐다. 따라서 최근에 유입된 외지인들은 훨씬 더 외곽인 6군, 8군, 12군에 머문다.

 

지난 2020년 12월 9일부로 투득군과 2군, 9군이 통합되면서, 투득시가 출범했다. 베트남 최초의 시(市) 안에 시라는 컨셉이며, 호치민시의 직속 1급도시가 되면서 위상이 격상됐다. 베트남에는 5개의 중앙직할시, 하노이(Hà Nội), 호치민시, 하이퐁(Hải Phòng), 껀터(Cần Thơ), 다낭(Đà Nẵng)이 있는데, 투득시의 위치는 이들보다 다소 낮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행정구역을 나눈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2군의 투티엠(Thủ Thiêm) 신도시 개발계획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투티엠 개발은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됐으나,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해묵은 문제다. 시간이 지나도 진척이 없자, 아예 전담부서를 두기 위해 시로 승격시켰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어쨌든 개발계획만 보면, 좋은 시너지 효과가 있을 거라 기대된다.

 

대학교들이 밀접한 투득군에서 인재를 양성해, 금융의 중심지가 될 2군과 각종 하이테크 산업단지가 결집될 9군에 공급하며 산학협업을 지속하는 게 계획이다. 쉽진 않겠지만, 성공한다면 호치민시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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